그리스 비극과 코러스
그리스 비극에서뿐만 아니라 현대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나약함, 두려움, 연민, 모순 등은 비극적 사건을 이루는 요소들이 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비극성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어로 ‘아나그노리시스(anagnorisis) ’, 곧 인간 자신이 스스로 비극적 존재임을 ‘인정’ 하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 그리고 우리와 만나게 될 안티고네는 맞닥뜨린 운명의 비극 앞에서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는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코러스는 배우이자, 이상적인 관객이자, 무대와 객석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또한 극의 분위기를 설정하고, 사건의 실마리와 종말을 예시하며 극의 반전 효과를 제공한다. 코러스는 춤과 함께 율동적 기능을 하거나 직접 악기가 되기도 했다.
<안티고네 인 성균관>의 ‘코러스’들은 기존의 활용방식은 물론, 매우 다양한 형태로 연극 속에 존재하고 있다.
새롭게 재해석된 코러스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안티고네’라는 그리스 이름은 ‘~에 대항해, ~을 대신해’란 의미의 접두어 ‘안티(anti)’와 ‘자궁, 탄생, 어머니’를 의미하는 ‘고네(gone)’의 합성어다. 직역하자면 ‘부모(어머니)에 대항해’ 등장한 인간이다. 안티고네는 부모가 상징하는 과거의 폭력적인 신화에서 탈출해 아테네 도시문명과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새로운 가치를 표방할 개인이다. 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의 다른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막 시작한 도시문명과 그 문명이 상징하는 가치에 순응하지 않고 모호한 관계를 유지한다. 소포클레스 비극에서 그 모호함은 기존 질서와의 전면적인 대결로 전개된다.
날마다 반성하고 날마다 진보하여
진실한 용기로 늘 뜨겁고
언제나 타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모든 것을 창조적으로 바꾸어가며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고
내 작은 힘이 타인의 삶에
용기를 줄 수 있는 배려를 잊지 말고
한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 없이 역사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자
그래 한 순간도 머물러서는 안된다.
난 무엇이 될까?
10년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난 나의 미래가 불안하고 자신도 확신도 없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의 일신만을 위해 호위호식하며 살지만은 않을 것이다.
결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 김귀정 열사가 남긴 일기 '10년 후에 나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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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정 열사
成大(성대) 여학생 시위 중 사망 / 퇴계로서 사복체포조에 쫓겨 달아나다 20여 명과 함께 넘어져 깔려 / 학생 천여 명 병원서 항의농성
서울 등 전국 22 개 도시에서 25 일 오후 열린 ‘노 정권 퇴진 제 3 차 국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참가자들이 도심 곳곳으로 진출하여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25 일 오후 5 시 30 분쯤 서울 퇴계로 4 가 대한극장 건너편 진양상가골목 입구에서 경찰이 다연발 최루탄을 쏜 뒤 검거에 나서자 이를 피해 달아나던 성균관대생 김귀정 양(25·불문 3)이 넘어지면서 함께 달아나던 시위대에 깔려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경찰은 이날 종전의 해산 위주 진압방식과는 달리 서울에서만 전체 시위대의 두 배에 이르는 전경 150 여 중대 2 만여 명을 동원, 극렬행위자·주동자 등을 끝까지 추적해 모두 검거한다는 초강경 진압방침에 따라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자 오후 5 시 20 분쯤부터 다연발 최루탄을 발사했다. 목격자 김정훈 군(21·공주사대 국민윤리 4)에 따르면 김 양은 경찰이 다연발 최루탄을 계속 발사, 진양상가 쪽으로 몸을 피했으나 경찰 체포조가 추격해오자 폭 3m 쯤의 좁은 상가 옆 골목길로 시위대 20 여 명과 함께 달아나다 골목 입구에 주차돼 있던 봉고차에 걸려 넘어지면서 맨 밑에 깔려 숨졌다는 것이다.
하 양에 따르면 김 양을 포위한 시위대가 쓰러진 뒤쪽에서 사복체포조 10 여 명이 달려와 사과탄을 터뜨린 뒤 5 분여동안 방패·곤봉으로 위에 넘어져 있던 시위대를 내리쳤으며 자신의 앞에 있던 한 남학생이 “여학생이 죽었다”고 소리치자 경찰이 길을 터주었다는 것이다.
김 양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성대생(成大生) 등 1 천여 명이 응급실 주변과 병원 앞뜰에 모여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 채 “더 이상은 못 참는다. 우리 학우 다 죽이는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철야농성했다. 학생들 중 50 여 명은 시신 사수대를 편성, 김 양 사체가 있는 1 층 응급실 앞에서 삼엄한 경비를 펴는 한편 현관에 철제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 진입과 시신 탈취 등에 대비했다.
범국민대책회의 권영길 공동의장 등 간부들도 이날 백병원에 도착해 학생들과 함께 농성에 들어갔으며 김 양 사인에 관한 자체조사에 착수했다. 대책회의는 이날 김 양 사망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 “이번 사고는 경찰의 공개적이고 폭력적인 과잉진압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강경대 군 사건 이후 경찰의 무분별하고도 야만적인 시위 진압 방법이 전혀 바뀌지 않는 이 현실이 김 양 죽음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인형 제작자 이지형의 도움으로 코러스 배우들이 직접 인형을 제작했다. 인형 제작 작업은 신체구조와 근육에 대해 배워 파이프를 사용해 뼈대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위에 버려진 페트병과 신문지, 비닐 같은 폐품을 이용해 근육과 살을 채웠다.
처음 재료들을 모아두었을 때는 그저 본래의 모습 자체로서의 물성이 강해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힘을 합쳐 폐품을 모으고, 코러스들이 페트병을 자르기 시작했다. 빈약했던 파이프 뼈대에 폐품들을 한 겹 씩 더할 수록 폴리네이케스 인형은 점점 두터워지고, 묵직해지고, 마침내 사람의 형상을 찾았다.
제작 도중 미완성의 인형을 가지고 연습하다 덧대어 붙였던 페트병 조각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그때 인형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마치 시신의 살점으로 여겨져 여기저기서 안타까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비록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인형이지만 연극수행원들은 폴리네이케스 인형을 이미 하나의 인간적인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죽은 인간의 몸은 순리대로 자연으로 돌아가 흙이 되는 자연의 축복을 얻게 되지만, <안티고네> 속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되지 못함으로써 영원히 지상에 남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 점은 마치 사용을 다한 플라스틱이 썩지 못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닮아있다.
소리를 하나로 모은다는 것.
우리의 목소리가 하나가 된다는 것.
우리가 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에 대하여.
합창과 공명
우리의 합창곡 <아침이슬>은 7-80년대 저항문화를 상징하는 노래로 유명하다. 아침이슬을 만들고 부른 김민기 대표는 사실 이 곡에 저항의 의미를 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두근거림을 주었다. 우리는 당시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노래를 우리의 광장 금잔디에서 부른다.
배우이자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인 이한밀 감독님께서 합창 지도를 맡아 주셨다. 살짝씩 어그러져 있던 박자와 음들이 음악감독님의 유쾌한 지도 아래 맞춰져 갔다. 한 명 한 명의 소리들이 모여 하나가 된다는 것을 모두가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이 곡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반복해서 멜로디를 되뇌이면서 노래와 관계를 쌓았다.
"이 곡에 대해서는 가사, 멜로디조차 몰랐다. 하지만 공연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저항의 역사가 이 노래를 부를 때 스쳐 지나간다. 내 삶 속에 있던 모든 일들이 내 걸음과 아침이슬의 선율에 맞춰 하나씩 지나갔다."
"자신의 소리를 정확히 내고 음정을 맞추며 합창을 하는 과정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의 소리는 하모니가 된다. 목청을 열고 크게 소리치면서 서로의 소리를 듣고, 숨을 쉬는 구간까지 맞춰가며 연습을 하다보면, 우리는 그제서야 아름다운 선율을 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이 공연을 준비하며, 한 목소리로 함께 노래하려고 노력한다. 공연이 끝나더라도 모두와 함께 하모니를 내기 위해 각자의 음을 충실히 내면서 서로를 받쳐주고 싶다."